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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에러메시지 해결법

원인 : 용량이 충분해도, USB를 연결해놓고 [제거]를 안하고 그냥 뽑을 경우, 저런 문제가 생긴다.

해결 방법은
1. 이동식 디스크로 인식 시키고, 안에 있는 내용을 컴퓨터에 백업 한다
2. 이동식 디스크를 포맷한다. (FAT32, 빠른 포맷)
3. 최신 펌웨어를 넣고 재부팅 시켜서, 메뉴 화면까지 가게 한다.
4. 백업해 놓은 자료를 다시 P2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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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삼성 하계수련대회

Posted 2007. 6. 14. 09:01


음음... 작년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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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st

Posted 2006. 9. 4. 09:44


/임정훈 - 953점(1등급)
S/W Lab.1(무선4G)

/최창현 - 953점(1등급)
S/W Lab.1(무선8G)

/류승호 - 933점(1등급)
S/W기술개발그룹(무선)

이거 합성이겠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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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각

Posted 2006. 9. 2. 19:13
점심 메뉴로 나온 튀각
갑자기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울컥~

어렸을 때 외할머니댁에 가면 맛있는 튀각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그와중에도 설탕 많이 묻은 놈, 두껍지 않고 바삭한 놈을 먹으려 부던히도 골랐던게 생각난다.
다 먹고 나서도 이빨 사이에 낀 것을 손가락을 집어넣으서 빼먹던 기억이 난다.
제작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댁에 가도 더이상 튀각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튀각을 보니 갑자기 외할머니가 생각나더군
신기하게도...
아무 것도 아닌 그 튀각이
시간을 넘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공간을 넘어 할머니댁으로 데려가고,
죽음을 넘어 할머니를 생각나게 한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그 순간에...

각자 나름의 튀각 같은 추억여행을 해주게 하는 매개체가 있겠지.
다른사람에게 나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어느 순간 너무나 보고싶게 할까?



P.S : 다음 TV팟에서 영화 if only 뮤직비디오를 봤다.
그것은 내가 한 여인을 사랑했던 모습과
선생님의 꿈을 잠시나마 일찍 느껴봤었던 그 모습으로
나를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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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좋은 점 3가지

Posted 2006. 8. 31. 09:56
1. 어디라고 말하면 그나마 부가 설명없어도 되는...
2. 월급 안 떼먹고 꼬박꼬박 나온다.
3. 변기마다 있는 비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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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outoftheocean.com BlogIcon 델버

    | 2006.08.31 10:25 | PERMALINK | EDIT | REPLY |

    적극 동감
    어디 계신가요?
    저희도 비데 -_-)b 아주 좋아요~

  2. Favicon of http://www.pastelgrim.com BlogIcon 파스텔그림

    | 2006.09.04 09:25 | PERMALINK | EDIT |

    저는 구미에 있답니다.
    S/W Lab.1(무선 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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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열광과 유대의 인재경영

Posted 2006. 8. 8. 15:29

삼성, 열광과 유대의 인재경영 (日經Business, 8/7)
  by 미즈노 히로야스/水野 博泰 and 이노우에 유타카/井上 裕

< 序頭 >
  "삼성 위협론"으로 일본기업이 얻을 것은 없다.
  반도체와 액정의 거액투자에 떨고, 일본의 기술유출을 憂慮한다
  해도, 일본Maker의 경쟁력은 되살아 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신흥시장을 공격하는 Dynamic하고 치밀한
  人材經營을 일본기업은 순순히 배워야 하지 않을까.
  열광과 紐帶 ―.
  일본기업에서 언젠가 상실된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다.
  ( 編輯委員 水野 博泰 )

一絲不亂한 무용, 마음이 담긴 노래, 환성, 절규, 그리고 미소와 눈물 ─. 일상 생활에서 단절된 그 공간은, 모여든 1만명의 사람들이 이상하리 만치 흥분을 하는 熱狂의 도가니였다. 한국의 首都 서울의 동쪽, 고속도로를 2시간정도 이동한 山中에 평창 휘닉스파크가 있다. 여름에는 피서지,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붐비는 고급 리조트인데, 매년 6월의 3일간은 일반객을 받지 않는 空間이 된다. 
대형버스 몇십대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한국 삼성그룹 각 계열사의 사원들이다. 금년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국내에서 채용된 약 8,000명의 신입사원과 해외거점 사원, 계열사 임원 등 약 1만명이 집결하였다. 「Summer Festival」이라고 불리는 Big Event는 입사하여 1년간 실시되는 신입사원 연수의 총마무리이다.

1987년에 시작하여 금년이 20회째가 된다.
「삼성의 Pride」라고 크게 쓰여진 Gate를 지나면 거기는 別世界.
「여기서 우리는 하나가 된다!」라고 쓰인 현수막과 깃발.
「人材第一」,「最高志向」,「變化先導」,「正道經營」,「相生追求」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를 새긴 거대한 조형물. 호텔 벽에는 가지각색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情熱가득」「疾走本能」「突風雷神」「最强팀」등 日本人이라면 조금 쑥스러운 단어들이 쓰여져 있다. 호텔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거대한 간판이 몇십개나 있다.  과거의 Summer Festival을 소개하는 판넬 외에 선배사원으로  부터의 응원 Message 등이 쓰여져 있다. 

산길을 지나면 산에 둘러싸인 거대한 이벤트場이 나타난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검정색 … . 옷과 모자 색으로 구분된 젊은이들이 整列하여 있다. 회사별 팀으로 나뉘어 결속을 경쟁한다는 취지이다. 마스게임 式의 응원전, Idea전, 연극과 댄스, 밴드연주 등의 퍼포먼스가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등산. 아주 험한 등산길을 1열로 늘어서서 정상을 향한다. 지쳐서 울고 있는 여사원에게 남자사원이 손을 내민다. 「힘내라, 이제 다왔다」. 한사람이라도 탈락하면 의미가 없다. 전원이 이 산을 오르자. 그 순간 一體感이 생긴다.
금년 등산은 雷雨로 중지되었으나, 매년 이러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날 밤, 신입사원은 다시 이벤트場에 모였다. 해가 완전히 질 무렵에 1만명에게 초를 나누어 준다. 한 구석에 있던 임원이 초에 우선 불을 켠다. 그 임원은 자기   촛불로 주위 몇몇 사람의 초에 불을 붙인다. 다시 그 촛불로 주위 사람의 초에 불을 붙여 주는 일을 계속하여 순식간에 이벤트場은 1만개의 촛불로 가득 찼다.
무대에서 임원이 외친다.「삼성은 하나다 !」. 그 후에 1만명이 복창한다. 「우리는 하나다 !」. Festival의 클라이맥스다. 다음날, 젊은이들은 버스에 타고 각자의 생활과 직장으로 되돌아간다. 意氣投合하여 재회를 약속하는 사원도 적지 않으나, 대부분의 同期들과는 두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3일간의 일은, 한사람 한사람의 가슴에 선명하고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앞으로는 고난과 고투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삼성에서 일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하나」, 그런 보이지 않는
紐帶로 확실히 맺어져 있다.  각오를 다진 삼성맨, 삼성우먼이 세계로 떠나 갔다.

新興市場 개척의 첨병이 간다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조신형씨는 그 열광과 감동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 조씨는 혼자 고독한 싸움에도전하고 있다. 회사와 가족이라는 일상과의 관계를 끊고 현재는 중국 북경에 있다.「지역전문가」라는 사원 교육제도에 지원하여 금년3월에 單身으로 중국에 건너간 것이다.
 
지역전문가라는 것은 삼성그룹이 '90년에 시작한 해외연수제도.中堅社員 층에서 希望者를 선발하여 해외로 보낸다. 대학 유학이나 어학 유학, 인턴과 다른 점은 그 나라의 문화, 역사 및 습관을실제 체험하여 그 지역의 전문가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처음 3개월은 어학 공부를 하고, 남은 9개월간은 무엇을하여도 자유. 그러나 본사와 현지법인은 아무 지원을 하지 않는다. 큰 문제가 없는 한, 그 나라 현지지점에 가는 것도 금지라고한다. 아파트 구하기, 학교 구하기부터 인맥 만들기까지 전부 혼자 힘으로 하여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旣婚者는 單身赴任이鐵則이다. 조氏는 부인과 4살짜리 아들을 서울에 남기고 왔다. 한참 귀여울 때의 아이를 볼 수 없는 것은 괴롭다. 영업에서 홍보담당으로 업무가 바뀌고 일이 재미있어질 무렵 1년간 현장을 떠나는 것에 대해 솔직히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러나,지역전문가는 입사 때부터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던 조氏의 꿈이었다. 漢字를 사용하지 않게 된 한국에서, 어릴 때부터 중국과중국어에 큰 관심이 있어 중국어는 독학으로 공부해 왔다. 경제 발전이 두드러진 중국을「위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자신과회사에 있어서 최고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결심하였다. 이전에 지역전문가로 인기가 있던 나라는 일본, 미국 및유럽이었으나, 최근 몇년은 중국으로의 파견 희망이 쇄도하고 있다.  
이미 제도 시작부터 누계 900명 가까이 중국으로보내어 파견인원은 일본을 크게 넘어 섰다. 삼성그룹에서는 중국으로의 급속한 Shift가 진행되고 있다. 금년은 259명이 세계각국에 파견되어 그 중 94명이 중국으로. 인도와 러시아를 희망하는 사원도 급증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29명. 파견기간이 끝나 귀국한 사원은 후에 정식으로 그 나라 현지법인에 발령되는 경우가 많다. 즉 세계의 신흥시장을 개척하는 尖兵 養成制度인 것이다.  중국은 삼성그룹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시장의 하나인데,
그개척의 역사는 일본과 비교하면 아주 짧다. 한국과 중국의 國交가 정상화된 것이 '92년이다. '72년의 日中國交正常化로부터20년. 한국은 오랜 기간   중국으로부터 "南朝鮮"이라고 불릴 정도로 관계가 멀었다. 이러한 遲滯를 단숨에 쫓아갈 역할을담당하는 것이 조氏와 같은 지역전문가인 것이다.
조氏는 북경에 오기 직전 11주간, 연수소에서 철저한 어학교육을 받았다. 1년간의 면밀한 생활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지역전문가 선배들은 1년중 후반을 이용하여 그 나라 곳곳을 여행하거나 견문을 넓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방에서 만나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들과 귀국 후에도
연락을 취하고, 부임한 후에 재회를 기뻐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氏와 같은 시기에 중국에 온 지역전문가 중에는 중국악기를 배운다든지, 전통 무술을 배울 계획을 세운 사람도 있었다. 
「저는 다른 측면에서 중국을 정확히 알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조氏는 중국의 학자, 지식인, 저널리스트  등과 되도록 많이만나 이 거대한 나라의 사회 시스템과 저변에 흐르는 思考方式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본사에서홍보를 담당해 온 조氏에게는 앞으로의 업무와 직결되는 선택이기도 하다. 「꿈은 중국에 주재하는 것입니다. 2008년에는북경올림픽도 있으니 홍보맨으로서 흥분됩니다. 물론 회사가 인정해 주어야 하지만 다음엔 부인과 아이도 같이 데려오고 싶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말한 후, 조氏는 해가 지는 북경의 혼잡 속으로 사라졌다.

世界를 轉戰하는 숙련 기술자

重點市場을 정하자마자 글로벌차원에서 인재를 유동화시키는 속도가 삼성流 人材經營의 진수이다. 북경에서 동남쪽으로 차로 2시간, 天津市 교외의 공업단지에
삼성전자 액정모니터 공장이 있다. 중국 全域 28個 공장중의 하나. 연간 600만대라는 생산량은 세계 10個所의 모니터공장 중에서 最大이다. 半은 중국 國內向, 半은 輸出用이다. 世界 Share 1위, 중국시장에서도 6년 연속 Top Share를    유지하고 있다. 이종태氏는 생산기술의 총지휘자로서 매일 현장을 관리하는  40대 중반의 熟鍊 技術者이다. 1989년부터 '94년까지 스페인 Video공장에서 경험을 쌓은 후, 짧은 한국 근무를 거쳐 天津으로 부임하였다.
天津工場에 근무하는 약 2,200名의 社員中 대부분은 현지채용의 중국인. 이氏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러한 현지채용 사원들의 기능을 높이고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모니터공장이 하나도 없고 모두가 해외로
移轉하였다. 삼성의 생산관리 노하우는 해외공장에 축적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본사에서의 생산관리에 관한 교육제도도 충실해졌으나, 현장에서의 노하우 傳承보다 나은 것은 없다.

그래서 이氏와 같이 해외공장에서 해외공장으로 이동하는 기술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의 현장관리자를 육성하는 것도 이氏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이다.
「天津을 World Best 공장으로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氏.  그 목표가 달성될 때, 또 다른 신흥시장의 공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必勝의 人力 Dynamism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사원이 어느 이벤트에서 만났다.  兩社가 강가에 모였을 때, 주최자가「강으로 들어가면 안된다」고 指示를 하면 삼성 사원은 절대로 강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사원들은 모두가 강에 들어가 물놀이를    시작하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20대 남성의 이야기이다. 정해진 Rule은 예의바르게 지키고 무엇에도 돌출하는 것을 싫어하는 삼성 사원. 한편 束縛을 싫어하고 남보다 눈에 뛰는 것을 좋아하는 현대 사원. 삼성의 社風과 기질이 한국내에서 어떻게 보여지는 지에 대해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그 사람은 말한다.

사람은 키우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삼성은 그룹 創業家의 2代 회장인 이건희 會長에 의한 카리스마 經營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일화는 강력한 Top Down式 경영에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兩面性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개한 세가지 事例에서 알다시피 사원의 士氣와 능력, 결속을 최대한 끌어내는 삼성의「人材 만들기」시스템은 틀림없이 Top Down式 경영이 만든 것이다.
그룹의 중핵인 삼성전자의 급성장은 반도체와 액정 등의 거액투자가 상징하는
「資金」의 Dynamism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글로벌 차원의「人材」流動術에 바로 승리의 비결이 있다. 일본기업은 이것을 진지하게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지.  그 원점이「人力開發院」이다. Summer Festival과 지역전문가,
현장전문가를 비롯하여 신입사원, 경력사원으로부터 임원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삼성그룹 人材敎育의 總本山이다.  한국내에 있는 11個所의 교육시설과 연계하여 전자, 금융, 무역, 서비스, 기계, 화학부문의 그룹 25個社 2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사원교육을 도맡아 하고 있다. 서울시 교외 山中에 세워진 人力開發院.
거기를 방문한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은 거대한 石柱에 받쳐진 장엄한 정면 현관이다. 약 500명의 숙박시설이 있는 거대한 연수소는「창조관」이라고 하며 삼성그룹에 소속하는 임직원은 반드시 그리고 몇번이나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장소.「21세기의 글로벌 삼성을 이끄는 인재를 양성하는 士官學校다」라고, 신태균 상무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말하자면 삼성 經營의 혼이 깃들인 "聖地"이다.
館內 여러 곳에는 삼성 經營의 철학, 이념 및 슬로건이 게시되어 있다. 연수실 입구에는 창업자이자 先代會長인 故·이병철氏 자필로「人材第一」이라고 쓴 額子가 걸려 있으며, 1987년에 이건희 會長이 뒤를 이은 후에 발표한 Message까지 새겨져 있다.  신입사원은 입사 후 바로, 여기와 다른 연수소에서 단련을   받는다. 25泊 26日의 集中 合宿硏修이다. 책상에서의 공부보다도 체험형, 참가형의 프로그램이 중심이며, 「드라마 삼성」이라고 하는 연극에 전원이 참가하여 삼성의
역사, 전통 및 경영철학을 배운다. 팀웍을 양성하기 위한 야외활동과 사회봉사활동 등도 있고, 한국의 지방도시로 흩어져 삼성제품을 판매하는 "行商硏修"라는 것도 있다.  삼성 일원으로서의 기초를 습득시키고 Summer Festival을 통해  1년간에 걸친 新入社員 敎育의 총마무리로 한다. 과장, 차장, 부장, 임원으로 직책이 올라갈 때마다 반드시 받아야 할 職位別 연수 프로그램 외에 사원의 上位 3 ~ 5%를    대상으로 한 유망 간부 양성 프로그램, 해외거점의 주재원과 현지채용사원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외국어 교육, 지역전문가제도 같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삼성 사원을 양성하는  국제화 프로그램 등 복합적이고 다양한 메뉴를 完備하고 있다.

"戰略國家"로 人材를 Shift

그 중에서도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이 국제화 프로그램일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매출의 약 85%, 이익의 90% 가까이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日本의 전자 Maker와 같이 국내시장에서 어느 정도 Share를 확보하면 살아 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삼성에 있어서 글로벌化는 피할 수 없었던 숙명이고, 해외시장을 개척할 터프한 人材의 육성만이 문자 그대로 생명선이다.

각국을 깊숙히 연구하는 지역전문가는 전략적으로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다.  삼성전자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 시장과는 달리 앞으로 확대가 기대되는 4個國을 「戰略國家」로 지정, 또한 전략국가 다음의 7個國을       
「重心國家」로 선정하여 각각의 시장에서 Top Share를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인 공략 Road map을 그리고 있다. 전략국가에는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 등의 급성장시장, 중심국가에는 프랑스, 이태리 등 방법에 따라서는 더욱더 Sare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나라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시장에는 한국본사에서 實務 部隊를 직접 움직여서 거점 構築을 추진함과 동시에, 지역전문가를 중점적으로
파견함으로써 인재와 지식의 층이 깊어지도록 한다.

실은, 2000년경까지 일본은 가장 파견자수가 많은 나라였다. 阪神·淡路(Awaji)大地震이 일어난 1995년 1월 시점에 약 80명이 파견되어 있었고, 거의 모두가 봉사활동으로 被害地의 지원활동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그 후 서서히 감소하여 연간으로도 누계로도 중국에 지고 말았다. 중국시장 등의 급속한 발전을 보고 파견 인원수를 Shift한 結果이다.
일본에서 배울 것이 없어졌다는 이유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여기다!" 하는 나라를 정하여 人材를 注入하는 Global Dynamism을 상징하는 하나의 例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중국과 같은 전략국가에서는 한국인 사원뿐만이 아니라 현지 채용사원 대상으로도 아낌없이 삼성 교육을 실시한다. 중국에는 삼성그룹 전체로 28個의 공장, 28個의 판매법인, 5個의 연구소가 있다. 삼성전자만을 보아도 해외사원 7만명중 5만명이 중국에 집중해 있다.
「중국국민에게 사랑받고, 중국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을 슬로건으로 하는 중국삼성에서는 소수의 한국인 주재원이 몇만명의 중국인 사원을 "관리"한다는 방법을 채택하지는 않는다. 한국인 사원과 중국인 사원의 거리를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의한 상호이해가 최적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인재교육 프로그램을 잇달아 실시하고 있다. 2005년에는 "逆지역전문가제도"라는 제도를 신설하였다.
현지 중국인 사원중 장래의 간부 후보를 선정하여 한국에 보내 삼성의 경영철학을 교육시킨다. 연수생은 인력개발원에서 10주간의 한국어 연수후, 한국 본사에서 1~2주간의 실무연수를 받는 본격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해외에서의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지사원과 주재원과의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 삼성측이 현지화 하는 것과 동시에 현지채용의 사원들에게도 삼성과 한국에 대해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중국삼성에서 이 연수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이계원 人力資源部 次長은 말한다. 금년은 天津工場의 신입사원 약 40명이 Summer Festival에도 참가하였다. 해외채용사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무대에 서서,  
경영간부와 한국인 사원 약 1만명 앞에서 퍼포먼스를 발표.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중국시장을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판매원에까지 경영이념을 교육시킨다

이 외에 생산, 기술, Marketing別로 중국인 사원을 한국본사로 보내 실무연수를 받게 하는 등, 2001년부터는 북경대학의 협력으로 "Mini MBA강좌"를 개설하여 현지채용사원을 대상으로 교육시키고 있다. 인력개발원에서 제공하는 10주간의    합숙형식의 한국어 기초강좌를 중국에도 만들고, 일을 하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제도도 마련하였다. 국토가 넓은 중국에서는 연수를 위해 빈번이 사원을 부르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기 때문에「China Samsung Cyber University」라고 하는
e러닝 講座도 준비. 현재 약 40개의 강좌가 있어 기본적인 직능교육과 경영이념, 기업문화에 대해서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PC로 언제, 어디서든지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직접 소비자를 응대하는 판매원의 교육도 철저하다. 중국에는 家電量販店이 Maker에 대해 매장을 Rental하는   유통제도가 있다. Maker는 임대료를 지불하여 장소를 빌려 店鋪를 꾸미고, 판매원도 Maker가 채용한다. 삼성전자는 中國 本土와 홍콩, 대만을 포함하여 약 1,400명의 판매원을 고용하고 있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중국인 여성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접객 태도가 그대로 삼성의 Brand Image를 만든다. 일주일에 한번은 지역마다 판매원을 모아 판매연수를 실시한다.
접객방법과 A/S에 대해 반복하여 가르치는데,「최대의 포인트는 삼성의 기업문화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다」라고, 중국삼성의 박정준 市場企劃部長은 말한다.

그래서 삼성경영의 Bible인「新經營」중국어판을 판매원에게 배포하여 숙독시키고 있다. 이 외에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 각지의 빈곤지역에서「희망학교」라고 불리는 학교의 건설프로젝트에 참가하거나, 白內障 환자에게 무료로  "개안수술"을 한다거나,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하는 Volunteer활동, 植樹활동, 농촌지원 등을 폭넓게 하고 있다.
成長市場으로 정하자 마자 바로 한국에서 인재와 자금을 보내고, 반대로 현지로부터 사람을 받아들인다. 여러가지 인재 만들기 시스템을 구축하여 그 나라의 사회에 스며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機敏한 동작이 글로벌기업 삼성의 강점의 원천이다. 인도와 러시아 등의 신흥시장에도 잇달아 응용해 갈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經營 Top

그러나 이러한 一連의 인재만들기 구조가 처음부터 아무 문제없이 시작된 것은 아니였다. 예를 들면, 지역전문가는 각 부문에서 가장 활약하고 있는 30세 전후의 인재가 1년 이상 현장을 떠나게 된다. 직속 상사 입장에서는 우수한 인재이기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本心. 현장 업무가 돌아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강권을 발동한 것은 바로 이건희회장이다. 부서내에서 가장 우수한 사원을 보내지 않는 상사는 人事考課 평가가 나빠질 거라고 전사에 通報한 것이다.
이회장의 指示는 절대적이다. 이렇게 되면 현장측도 생각을 바꾸는 수 밖에 없다.
일 잘하는 부하가 없어져도 업무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평상시부터 다른 부하의 능력을 끌어 올리거나 책임 負荷를 평준화시키는 등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직장의 활성화에도 연결되어 누군가가 빠져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체제가 되었다. 교육연수로 자리를 비우는 것에 불평, 불만을 말하는 것은  지금은 Taboo視 되고 있다. 반대로 자리를 비우는 사원에게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것은 일반사원에 局限된 얘기가 아니다. 상무급의 선발 연수에서는 약 한 달에 걸쳐 임원이 자리를 비우게 된다. 그간 업무가 정지되면 실격이다.

삼성전자의 임원에게 인재활용의 요체를 물으면, 이윤우 副會長은「Top Down으로 No.1主義의 문화를 철저하게 한 것이다」, 반도체총괄 황창규사장은「장기적인 경영Vision下에서 部門長이 전력으로 달리면 부하가 따라온다. 그리고 市場도 움직인다」, LCD총괄의 이상완사장은「기술과 인재의 鎖國을 하고 있으면 기업에 있어서는 언젠가 치명상이 된다」고 대답하였다. 인재교육의 구조는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形骸化. 육성하기 전에 단기적인 성과를 추구하여 전략적인 인재배치
결단도 못 내리는 그런 일본기업의 Top에게는 귀가 따가운 말일 것이다.

가까이 있는 삼성인

금년, 일본의 지역전문가는 東京과 大阪 합쳐서 29명.  김선범氏는 그 중의 한사람.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출신의 39세. 부인, 5세와 8세의 딸을 한국에 남겨 두고, 금년 3월에 일본에 왔다. 「일본에는 반도체의 협력Partner가 많다.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다」.  정확한 일본어로 진지하게 말한다.
어학학교에 다니면서 주말에는 일본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와 만나, 친해진 Coffee Shop 店長과도 여러 얘기를 나눈다. 시간을 내서 여행도 한다.
立山黑部, 廣島, 下關, 岡山, 金澤, 箱根을 여행했다. 여름휴가에는 北海道와 沖繩에 가는 것이 즐거움이다.「한국에서는 삼성사원답다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큰 기쁨」. 거짓없이 말하는 김氏. 이런 삼성人이 당신 가까이에도 있을 지 모른다.
그리고 일본기업이 호시탐탐 노리는 신흥시장 길거리에도 ….

編輯長 特別 인터뷰 < 윤종용 副會長 >

  ∼ 變化는 人間이 創出하기 나름 ∼

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하여 이익 1조엔 기업으로 급성장시켰다. 「변혁」을 숙명으로 떠맡은 경영자는, CEO(최고경영책임자)취임으로부터의「10년개혁」에 하나의 매듭을 짓고 진실한 글로벌기업으로의 비약을 맹세한다.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인재」발굴과 육성에 전력을 기울인다.
( 編輯長 井上 裕 )

Q. 단도직입적으로 삼성전자 급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A. 많이들 물어 봅니다만,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타사에 자랑할 만한 참신하고 기발한 경영테크닉이나
  관리수법을 생각해낸 것은 아닙니다.
  할 일을 열심히 해 온 것 뿐입니다.
  10년전의 삼성과 현재의 삼성은 확실히 다릅니다.
  변하게 된 계기는 1993년의 이건희회장이 선언한「新經營」
  이라는 理念입니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고 있으니 본인 자신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강렬한 Message였습니다.
  다만, 인간도 회사도 금방 변할 수는 없습니다.
  삼성이 정말 변한 것은 90년대 후반의 아시아 금융위기로
  한국이 IMF 管理下에 놓인 때부터 입니다.
  國家가 생사의 기로에 섰습니다.
  그 위기감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또 어떻게 되겠지 하는 安易한 생각은 모두 버렸습니다.
Q. 동시에 글로벌기업으로 방향을 바꾸었죠.

A. 네. 당사 매출의 85%는 해외입니다. 한국 시장은 매우 작기
  때문에 우리는 해외로 활로를 정하는 수 밖에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거대한 국내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Share를 확보하면 되는
  일본기업과는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한국은 아직도 빈약한 나라이기 때문에 풍족한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세계 어디라도 달려가서
  죽도록 일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 남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다른 삼성

Q. 역시「人材」가 경영의 토대에 있는 것이네요.

A.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능력있는
  사람을 채용하여 회사에 들어와서도 시간을 들여 육성하는
  것입니다. 삼성의 「人材第一」이라는 경영이념을 만든 분은
  創業者이자 선대회장인 故·이병철 會長입니다.
  경제규모, 종합적인 國力面에서 開發途上에 있던 한국에서는
  자원이라고는 人材 외에 없었습니다. 뒤를 이은 이건희 會長은
  人材第一의 방침을 더욱 더 철저히 하였습니다. 임원도 사원도
  이것은 확실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의 기업문화는 아주
  좋습니다. 조금 자랑이 됩니다만(웃음). 
  파벌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철저하게 배제합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와 보수를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에 파벌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부정도 없습니다.

Q. 윤부회장 자신의 경영철학은 어떤 것입니까.

A. 企業經營이란「資源」과「Process」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활동이라는 것은 Service와 물건을 팔고,
  돈을 벌어 그것을 재투자하여 더욱 성장하는 것의 반복입니다.
  經營者의 일은 資源과 Process를 어떻게 배치하여 組合하는가가
  중요합니다만, 資源도 Process도 시대흐름에 따라 늘 변합니다.
  혁신의 연속인 것입니다. 그러니 개혁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의 삼성과 내일의 삼성이 같으면 안됩니다.
  지속적으로 하고는 있으나 확실히 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農耕社會, 産業社會, 그리고 현재의 Digital社會에서는 資源도
  Process도 전혀 다릅니다. 30년전에 黑白TV를 생산할 때와
  薄型TV를 생산하는 현재와는 경영의 Process가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반도체나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변화에 경영Process 혁신이 따라가지 못할 때,
  기업의 성장은 멈춥니다. 기술자는 기술의 Process를 바꿉니다.
  경영자는 경영의 Process를 주저말고 바꿉니다.
  시대의 변화에 저항하면 안됩니다. 조용히 따라야 합니다.
  나라도 기업도 폐쇄적인 곳은 발전하지 않습니다.
  특히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와 단일민족의 나라는 유연성이
  없습니다. 한국이 바로 그렇고, 일본도 해당되지 않습니까.   
  여러 피가 섞여 Dynamism과 유연성을 가진 미국과 같은
  나라와는 다릅니다.

  일본에서 버블붕괴 이후 15년이 지나도 개혁이 잘 안 되는
  것은 그런 부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그 이상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삼성은 세계로 향한 Open된 조직이 되고 싶습니다.
  사원의 마음을 열고 싶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창조력이나
  창의력이라는 것은 생기지 않습니다. 미국에 건너가 공부한
  한국인을 채용하기도 합니다만, 이제 시작입니다.

한국적인 것은 떨쳐 버린다

Q. 글로벌기업이라는 이유로 걱정이 많겠습니다.

A. 그렇습니다. 현재 채용한 사원 대부분은 한국인입니다만,
  다음 단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더욱 Open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창조성이라는 점에서는 우리는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특히 미국과 유럽 같은 여러 나라와 지역의
  사람을 계속 채용하고 싶습니다. 삼성이 안고 있는 큰 문제는
  한국본사, 한국내 공장이 글로벌化의 흐름을 리드하기는 커녕,
  따라가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Q. 아주 엄격한 인식입니다. 한국기업이면서도 한국적인 것을
  버려야 하니 말이에요. 힘들지만 중국, 러시아, 남미,
  아프리카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실 겁니까.

A.  우선 영어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기업은 해외인재 채용시 어떤
  지역에서라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외로 진출할 때,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인재는
  현지에 없습니다. 역시 영어입니다. 우리가 영어에 적응하지
  않는 한, 最前線에서 Communication을 취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영어는 그리 잘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當社가 안고 있는
  큰 과제입니다. 일본기업도 같지 않습니까.

Q. 윤부회장은 일본어를 아주 잘 합니다만, 앞으로 일본어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건가요 ?

A. 상대적으로 보면 일본어의 의존도는 확실히 저하될 것입니다.  
  최근엔 일본어보다 중국어입니다.
  한국에서는 한자를 읽고 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만, 삼성에서는 제대로 교육하려고 합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일본, 한국, 중국은 서로
  협력해가야 합니다. 10년, 20년 지나면 이 3個國이 세계경제의
  20 ~ 30%를 차지하게 됩니다. FTA(자유무역협정)문제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전자분야에서는 관세는 거의 없습니다.
  농업, 화학, 철강, 자동차에 대해서도 共存共榮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동아시아권의 
  경제발전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과거를 뒤돌아보기만 하면
  前進할 수 없으니까요.

Q. 다만, 글로벌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기업의 利害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적지 않습니다.

A. 확실히 그렇습니다. 생산거점을 어디로 하느냐를 계획해도   
  해외로 옮긴다고 하면 國內를 空洞化시킨다고 큰 반대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기업이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Local한 국가와 글로벌한 기업의 利害는 처음부터 일치하지
  않습니다.  육성하기 때문에 맡길 수 있다
Q. 작년에 2010년의 매출을 2배로 한다는 大目標를 제시했습니다만,
  2010년에는 세계의 Digital産業은 어떻게 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  

A. Key Word는 「融合」입니다. 技術的으로도 法制度的으로도.
  PC, TV, 무선, 휴대폰, 방송, 통신이라는 것은 브로드밴드로    
  전부 하나가 되어 구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지겠죠.
  Digital機器를 구성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Display,
  반도체Chip, Memory 등 세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 외에는 Battery정도입니다.
  그런 시대에 있어서의 附加價値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혁신적인 부품과 Marketing이라고 생각합니다.
  SCM이나 생산시스템은 부가가치의 중심에서 멀어집니다.
  반도체는 多種多樣한 기능을 담은 高度로 복잡한 것이
  되겠지만, 集積度가 올라가 몇개에서 몇십개만 있으면 대부분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10년후의 액정은 지금의 액정보다도 훨씬 발달되어 있을
  것입니다. 

Q. 그것이 부품혁신이네요. Marketing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

A. 20 ~ 30년전이라면 기술의 축적과 경험이 많은 회사가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앞으로는 이런 것들이 필요 없어집니다.
  물론 혁신적인 부품을 만드는 기술력은 필요하지만, 하나하나
  부품의 集積度가 굉장히 올라가기 때문에 모노즈쿠리의
  대부분은 그런 부품을 조립하는 式이 될겁니다.
  누가 만들어도 같은 Cost로, 같은 품질로, 같은 제품이
  나올 것입니다.

  옛날 브라운관TV는 부품수가 1,500에서 2,000個 였기 때문에,
  생산기술의 優劣이 生産性과 Cost로 직결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TV內部를 보면 사용 부품이 적은 것에
  놀랄 겁니다.
  즉 他社와 차이를 낼 수 있는 곳이 적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품 가격에는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A社의 제품은 비싸게 팔리고, B社의 제품은 싸게 팔리는데,
  이것은 Marketing의 축적에 의해 결정됩니다.
  기능이나 디자인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결국 소비자의 Needs와
  마음을 잡는 경쟁이 된다는 것입니다.

Q. 과거 10년동안 급성장을 이룬 삼성이 앞으로의 10년도 성장을
  하기 위해서 사원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고 있습니까 ?

A. 네. 5년후, 10년후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를 잘 예측하여 …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책상에 앉아 아무리 예측해도 회사는
  성장하지 않습니다(웃음). 이렇게 변화가 심하면 예측도 맞지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5년전, 10년전 예측이 들어맞았나요?
  거의 맞지 않습니다. 수익의 목표는 제시하지만 그것은
  예측하고는 다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으냐. 저는 사원들에게 「변화의 선두에
  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본인들이 만들어 보라고요.   
  세상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삼성은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人材를 항상 찾고 있으며, 그런 사원을 육성하려고 합니다.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에 가기도 하여 守備範圍는 넓어집니다만,
  그런 人材를 육성해 놓으면 각각의 자리에서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래서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權限委讓이라는 것은 그냥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육성하는 것이   
  大前提입니다. 그 후에 責任과 信賴가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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